SVB 파산 위기, 美 4대은행 시총 하루새 68조원 증발
"파산땐 美역사상 두번째 규모"… 亞증시도 동반 하락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큰 상업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9일(현지시간) 대량예금인출 사태인 뱅크런 위기에 직면했다. 이 여파로 모회사인 SVB파이낸셜그룹의 주가는 하루 새 60.4% 폭락했고 미국 4대 은행 시가총액은 68조원 이상 증발했다.
전날 가상화폐 전문은행인 미국의 실버게이트캐피털 청산에 이은 실리콘밸리 유동성 위기가 월가를 덮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시스템 위기마저 올 수 있다는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월가에서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긴축 속도를 다시 높이겠다는 신호를 보낸 가운데 자칫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스타트업 전문 은행인 SVB는 전날 "18억달러의 세후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210억달러에 달하는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을 매각한다"고 밝혔다. SVB는 그동안 초과 현금 대다수를 미국 국채 등에 투자했는데, 연준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면서 보유 자산인 국채 가격이 크게 하락한 상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반적으로 은행들은 손해를 보면서 보유 채권을 매각하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대량예금인출 염려가 있을 때 현금 확보를 위해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SVB의 1분기 평균 예금 규모는 1670억~1690억달러로 올 1월 전망치 1710억~1750억달러에서 크게 낮아졌다. 고객인 스타트업이 보유한 자금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SVB는 22억5000만달러 규모로 증자를 단행하고 벤처캐피털인 제너럴애틀랜틱(GA)으로부터 5억달러를 투자받아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장은 이미 패닉에 빠졌다. 뉴욕타임스는 "SVB가 실패할 경우 2008년 JP모건체이스의 계열인 워싱턴뮤추얼 파산 이후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파산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자칫하면 SVB발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는 위기감인 셈이다.
더욱이 전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매파적 발언은 투자심리를 더욱 짓눌렀다. 이 여파로 JP모건 5.4%, 뱅크오브아메리카·웰스파고 6.2%, 씨티그룹 4.1% 등 미국 주요 은행의 주식이 동반 폭락했다. 이에 대해 마크 서스터 업프런트벤처 매니징파트너는 "SVB가 파산하면 하룻밤 사이에 수없이 많은 기업이 도산할 수 있다"면서 "이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24.50포인트(1.01%) 하락한 2394.59를 기록했다. 일본 시장에서도 닛케이225지수가 1.67% 하락했고, 홍콩 항셍지수도 3% 가까운 하락세를 기록했다.